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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화의 전통적 역할은 눈에 보이는 3차원의 사물을 캔버스의 평면에 그대로 재현하고 기록하기 위함이었습니다. 그러나 기술의 발전으로 현실을 충실히 모방하는 카메라가 도래하였고, 이로 인해 회화의 오랜 역할을 사진이 대체하게 되면서 회화는 현실의 모방과는 다른 역할을 찾게 되었습니다. 또한 현대미술의 발달로 인해 예술에는 다양하고 새로운 매체들이 사용되었습니다. 캔버스의 평평한 회화가 전부였던 이전의 미술과는 다른 새로운 형태의 파격적인 예술이 나타났고, 사람들은 전통적인 캔버스를 활용한 작품이 낡고 오래된 예술 방식이라는 인식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이러한 인식이 극에 달했던 때, 완성된 형태로서의 작품보다 아이디어나 과정이 예술이 되는 ‘개념 미술’이 등장하게 되었니다.
Marcel Duchamp, ‘Fountain’, 1917
개념미술의 선구자 마르셀 뒤샹(Marcel Duchamp 1887- 1963)은 '회화는 단지 눈의 즐거움만을 위한 작업이며, 예술은 망막이 아닌 개념으로 보아야 한다'고 이야기하였습니다. 그는 시장에서 구입한 변기에 사인을 한 뒤 <샘 (Fountain)>(1917)이라 제목을 붙이며, 작가의 아이디어만으로 일반적 사물을 예술의 영역으로 들여놓았습니다. 이후 아이디어를 바탕으로 한 개념미술, 미니멀리즘, 뉴미디어 작품과 대규모 설치 작업이 중심을 이루는 현대미술이 성행하게 되었습니다. 이러한 미술계의 흐름에도 불구하고 70년대 말, 80년대의 대규모 전시에서는 신표현주의라는 흐름 아래 전통적인 캔버스를 사용한 작품이 다시 등장하였습니다.

회화는 왜 끊임없이 돌아오는 것일까요? 시대에 따른 회화의 복귀는 이전과는 다른 맥락을 갖는데, 그렇다면 요즘의 회화는 이전의 것과 어떻게 다른 것일까요? 어떻게 이처럼 가장 오래된 예술 매체인 회화가 시대적 맥락에 뒤쳐지지 않으면서도 오랫동안 예술적 매체로서 명성을 유지할 수 있는 것일까요? 이러한의문들에 대한 해답을 지금부터 차례차례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시대에 따라 다른 얼굴을 가지는 회화
회화가 다시 돌아오게 된 배경에는 회화 스스로가 그들에게 부과되었던 ‘우상화’를 깨기 위해 노력한 것과 사회 경제적인 배경의 뒷받침이 있었습니다. 먼저, 회화는 기본적으로 작가의 직접적인 붓질이 작품의 특성이 되기에 작가의 ‘저자성’이 강조된 매체입니다. 모더니즘 미술 작품은 여기에 창조성을 최대로 발휘하게 되는 작가의 영웅적인 특성이 더해져 예술적 아우라까지 담기게 됩니다. 이로 인해 작품은 초월할 수 없는 우월함을 가지게 되고, 관람객은 작품을 감상할 때 개개인의 경험을 작품에 결부하여 읽어나가기 보다는 작가가 정해놓은 감상법을 따라가는 것에 익숙해지게 되었습니다.
(좌) Pablo Picasso, ‘Violon et raisin’, 1912 | (우) Jackson Pollock, ‘Drip Painting’, 1951
예를 들어, 피카소(Pablo Picasso 1991 - 1973)가 어떤 장면을 보고 자신의 방법대로 구상해서 이미지를 만들 때, 그는 자신의 관점에서 다양한 상황을 해석하고 종합하여 화면에 표현합니다. 이는 일종의 신의 시점과 같은 것으로, 즉 전지적 시점과 같다고 이야기할 수 있습니다. 또한 미국 추상표현주의의 대표 작가인 잭슨 폴록(Jackson Pollock 1912 - 1956)의 추상작품에는 어떠한 서사적 의미나 3차원적 입체적 형상이 담겨 있지 않고, 흩뿌려진 물감으로 인해 작가의 주체성만이 화면에 온전히 투영되게 됩니다. 그렇기에 신격화된 작가로서의 주체성이 그대로 담긴 ‘고귀한’ 회화가 탄생하게 된 것입니다.
(좌) Tony Smith, ‘Die’ .1962 | (우) Carl Andre. ‘Copper-Zinc Plain’, 1969
선과 색채를 통해 강렬한 감정과 격렬한 운동감을 드러내는 추상표현주의에 대한 반발로 나타난 미니멀리즘은 공장에서 기계로 뽑은 듯이 보이는 오브제가 전부입니다. 미니멀리즘 작품의 특징은 작가의 개입이 배제된 익명성과 기하학적 형태의 반복성입니다. 예를 들어, 토니 스미스(Tony Smith, 1912~1980)가 <죽다 (Die)>(1962)를 제작할 때 한 일이라곤 ‘철판으로 커다란 주사위 모양의 조형물을 만들어 미술관 마당에 설치해 달라’며 전화로 철공소에 지시를 내린 것이었고, 칼 안드레(Carl Andre, 1935~)는 벽돌을 바닥에 깔고, 전시가 끝나면 다시 해체해 트럭에 실어 날랐을 뿐입니다. 이들 작품에서 작가의 ‘인격’은 사라진 것입니다.
(좌) <회화에서의 새로운 정신(A New Spirit in Painting)>전의 전시 도록
(우) <회화에서의 새로운 정신(A New Spirit in Painting)>전의 전시 전경
오래전부터 작가의 특성은 전통적 회화의 화폭에 담겨져 왔습니다. 그러나 추상표현주의, 미니멀리즘 등을 거치며 작가의 숨결은 작품에서 사라지게 되었습니다. 이에따라 당시 미니멀리즘과 같이 지나치게 초연하고 지적인 동시대 미술에 대한 반발로 회화에 대한 관심이 다시 나타나게 되었고 이들을 '신표현주의'라 부릅니다. 신표현주의 작가들은 아무것도 표현되지 않았던 예술의 형태에 반발하면서 내용의 중요성을 외쳤고, 개성있는 붓질과 작가성을 화면에 다시 부여하려 노력하였습니다. 신표현주의는 그들의 시대정신이 녹아 있는 새로운 형태와 내용으로 작가성을 회복하려 했던 것입니다.

이러한 회화의 귀환은 70-80년대 대규모 전시를 통해서도 확인해볼 수 있습니다. 1979년 뉴욕의 휘트니 미술관에서 열린 <신 이미지 회화(New image painting)>전이나 1981년 런던의 로얄아카데미에서 열린 <회화에서의 새로운 정신(A New Spirit in Painting)>전은 모두 이전 10년 동안 발전되어왔던 회화의 새로운 측면에 집중하여 기획되었습니다. 이중 <회화에서의 새로운 정신>전에 참여한 이들은 대부분 젊은 작가들로서 추상표현주의, 미니멀리즘, 팝아트, 개념미술 등 다양한 회화 작품들을 선보였습니다. 특히 이 전시에서 주목 받았던 것은 회화 속에 나타난 형상성의 회복이었습니다. 이는 “예술을 위한 예술”1)을 위해 모더니즘 미술이 배제하였던 서정성, 은유, 상징 등의 요소들을 과감히 부활시킨 것입니다. 그리고 그 결과 작품에는 다시 작가의 의식 및 감성이 반영됩니다.
(위) Georg Baselitz, ‘Nachtessen in Dresden(Dinner in Dresden)’, 1983
(아래 좌) Anselm Kiefer, ‘Margarethe’, 1981 | (아래 우) Julian Schnabel, ‘Portrait of Stella’, 1996
회화의 부활과 함께 80년대를 주도하였던 안젤름 키퍼(Anselm Kiefer, 1945-), 게오르그 바젤리츠(Georg Baselitz, 1938-), 줄리안 슈나벨(Julian Schnabel, 1951-) 등의 작가들은 두터운 물감과 다양한 재료를 사용한 거친 표면으로 그들의 감정을 표현했습니다. 이들은 밀짚, 납, 깨진 접시, 물감의 점성 등을 통해 이전의 모더니즘 회화의 평평한 화면에서는 찾아볼 수 없었던 촉각성과 물질성을 부각시켰습니다.
시장과 회화와의 친화성
80년대에 이루어진 회화의 귀환에는 경제사회적인 여건과 시장과 친화적인 회화의 특성이 작용합니다. 미국에서는 2차 세계대전 이후 레이건 정부의 과감한 경제정책으로 경기가 되살아나면서 대규모 자본이 미술시장에 유입되었습니다. 이런 과정에서 미술작품의 거래가 늘어나게 되었고, 이는 시장친화적인 회화의 복귀에 긍정적인 영향을 끼쳤습니다. 그러나 1970-80년대 미니멀리즘이나 개념미술 작품은 부피가 커서 개인이 소장하기 쉽지 않았고, 공산품과 유사한 형태 탓에 구매자들의 호응을 얻기 어려웠습니다. 1982년, 비평가 크랙 오웬스(Craig Owens, 1950 – 1990)는 당시 비디오, 퍼포먼스, 설치 예술이 주류였던 미국 미술 시장에서 소장하기 용이했던 회화가 특히 많이 거래되었다는 점에 착안하여 예술계가 ‘형태가 있는(tangible)’것, ‘잘 팔리는 대상’2) 회화에 다시 주목했다고 이야기 한 바 있습니다.

또한 작품의 가격형성에 결정적인 영향을 미치는 요소는 미술가의 사회적 인지도와 명성, 즉, 작가성에 대한 아우라입니다.3) 이는 ‘천재성’에 대한 신화로, 저자성이 강한 매체인 회화는 미술시장에서 좋은 반응을 얻었습니다. 미술의 역사는 모더니즘 이후 작가의 ‘인격’을 배제하는 방향으로 발전했으나, 영웅성에 대한 신화는 계속해서 유효한 것으로 이해할 수 있습니다.
이렇게 회화는 계속되었고 현시대에서도 작가들은 다양한 매체 속에서 회화의 역할에 대해 고민합니다. 회화가 보여주는 여러 가지 얼굴은 전영진 작가, 송현주 작가의 작품을 비교하여 파악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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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영진

89x130cm (60호)

더 이상 실제 세계에 대한 사실적 재현이 회화의 목표가 아니게 된 지금, 전영진 작가는 회화가 무엇을 목표로 해야 하는가에 대한 질문을 던집니다. 이에 다른 예술적 매체들이 갖지 않는 회화의 고유한 성질인 '평면성'을 화면에서 부각시킵니다. 그 결과 3차원의 풍경은 입체성이 최대한 배제되고 기하학적 요소들을 사용한 패턴 안에서 색의 배열과 조화가 강조된 화면으로 나타납니다.
같은 시기에 제작된 송현주 작가의 작품은 화면에 선을 긋는 행위 자체를 드러내거나 지우는 작업을 반복하여 그려냅니다. 그는 회화를 시각적 '완성'이라는 개념에서 벗어나, 행위의 과정 속에 담긴 시간성을 녹여내는 매개체로 보고자 합니다. 예술작품을 해석하고 정의하는 것은 작가 자신이 아니라, 작품 바깥의 요소에 따라 결정된다고 보는 작가는 감상자와의 교감이 중요하다고 이야기합니다. 이러한 그의 작품은 작가와 작품의 상호작용, 감상자와의 교감, 제작된 시대의 영향들이 하나로 어우러져 예술의 존재에 대하여 탐구한 결과입니다.
새로운 매체의 등장, 기술의 발달로 인해 캔버스 작업이 아무리 쇠퇴하고 없어진다고 해도 예술은 결국 전통적인 평면적 작업과 결부되려는 성질을 갖습니다. 예를 들면, 사진이나 미디어의 매끈한 표면 위에 작가의 붓질을 첨가하는 경우가 그것입니다. 한편 회화의 형태는 완벽히 평평한 화면으로만 존재하기 보다, 부조의 형태로 입체성을 갖기도합니다.

발전은 전통이 굳건하게 다져진 후에 가능합니다. 미술의 개념이 계속해서 발전하더라도 미술의 모체였던 회화는 그 밑받침이 되어 살아있을 것입니다. 이는 현대미술이 시작된 지 100년이 넘은 지금도 사람들이 미술을 떠올릴 때 전통적인 형태의 캔버스를 가장 먼저 이야기하는 것이나, 여전히 평면회화의 거래가 가장 많은 점을 보면 알 수 있습니다. 작가의 독창성과 예술의 언어는 달라지더라도 결국 회화는 끊임없이 부활하고, 그 얼굴을 바꾸며 우리의 삶 속에 예술로서 건재할 것입니다.
용어해설
1) 1804년에 프랑스의 철학자 쿠쟁이 처음 쓴 말로, 예술의 목적은 어느 것에도 구속되지 않고 예술 그 자체에 있고 자신만의 독립된 가치가 있다고 주장하는 입장입니다.
2) Craig Owens, "Commentary: The problem with Puerilism", Art In America, Vol. 72, no. 6 1984(summne), p. 162.: Amelia Jones(ed.), A companion to contemporary art since 1945, Blackwell publishing, 2006, p. 91. 에서 재인용.
3) 인터넷 기반 미술 회사, 아트프라이스가 미술가별 세계 경매 낙찰가 총액을 발표한 것에 따르면, 2007년 한 해를 앤디워홀에게 내준 것 제외하고는 2002년 이래 2010년 까지 단 한차례만 제외하고 1위에 오른 작가는 피카소이다.- www.artprice.com
의 ‘Art Market Trends’ 참조, 정윤아, 박일호, 「미술품 경매의 역할 증대에 따른 문제점에 관한 고찰」, p. 305-306.
참고문헌
1) 전영백, ‘70년대 이후 현대 회화의 쇠퇴와 복귀에 관한 미술사적 논의’, 미술사학보. vol.29, 2007
2) 「추상표현주의..선/색채로 감정표현하는 사조」, 한국경제신문, 1996.9.4
3) 진중권, 진중권의 서양미술사 포스트모더니즘, pp. 121~143.
4) 전민경, 정경철, ‘20세기 현대미술에서 표현주의와 신표현주의 연관성’, 한국콘텐츠학회논문지, 2011, pp. 264-265.